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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Dairy

[20년 7월 일기] [우울증을 넘어 (2)] 회피하기에 바빴던 나의 18년 말

우울증 진단부터 우울증 치료 종결까지의 치유의 과정을 이 블로그에 담으려고 한다. 현 시점에서는 우울증 치료가 종결되었고, 치유도 많이 진행되었기에 이렇게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내 이야기를 적을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이러한 글을 통해 우선적으로 나 또한 더욱 성장할 것이고, 두번째로는 나처럼 우울증으로 힘든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나는 평생 우울과 담을 쌓고 살았던 것 같은데 ...


사실 난 평생 "우울"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생때부터 난 매우 밝은 아이였고, 항상 남들이 좋아해주는 친구였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굳이 남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남들이 다가오는 그런 아이였다. 주변 어른들은 나를 보고 걱정 없이 해맑아 보이는 아이라고 했었고, 주변에는 나를 부러워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인싸라기보다는 모두 다 호의를 갖는 무난한(?) 아이였다. 이러한 나였기에 나는 19년 초에 내가 경험한 "우울증 증상들"이 믿겨지지 않았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나는 마음 속의 어두운 부분들을 회피하면서 살았고, 그렇게 참다 참다보니 어느 순간 그 웅어리 진 상처가 터진것이다. 

18년 말에 난 취업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원래부터 있던 완벽주의가 심화되기만 했다. 원래의 '나'가 아닌 사회가 원하는 '나'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다고 느꼈고, 사회가 원하는 나로 살지 않으면 난 사회에서 도태되고,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생각을 넘어서 내게는 신념이고 믿음이었다. 그렇게 취업준비를 하면서 느끼는 공허한 감정이나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취업"은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 여기에서 "생존"이라 함은 돈을 벌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 아닌 의미로서의 수단이었다. 대학 졸업을 하면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해야만 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값"을 하는, 살 이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나를 자책하는 신념 속에 나를 가두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부족해보였고 나는 평생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내가 평생 해왔던 것처럼 "똑똑한 척, 잘하는 척"을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 안에는 "바보"가 존재했고, 내 안의 "바보"를 들키기 않기 위해 난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내가 원했던 특목고에도 진학했고, 좋은 대학에도 들어갔으며 어린 나이에 원하던 인턴도 했다. 동일한 방법으로 취업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사실 동일한 방법으로 취업도 했고 가능은 했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었다.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을 대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취업준비 스트레스가 극심하던 때, 현재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보니 이 사람은 내가 어떠한 모습이든 내가 어떠한 상처가 있든 내가 어떻게 하든 항상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그렇게 느끼고 나니 가족에게도 말 못할 나의 상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 사람에게는 내 상처들을 보여줘도 두렵지 않았다. 즉, 안전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남자친구 앞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상처를 오픈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슬픔과 두려움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찍은 한강공원 사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